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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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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앨런 맥기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음악가이자 음반 프로듀서로, 1983년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설립하여 오아시스를 발굴하며 브릿팝 열풍을 이끌었다. 펑크 록 밴드 활동으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으며, 크리에이션 레코드 해체 후 팝톤스를 설립하고 데스 디스코 클럽을 운영했다. 2008년 은퇴 후 2012년 음악계에 복귀하여 359 Music을 설립하고 Creation Management를 재개했다. 정치적으로는 노동당을 지지했으나, 이후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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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맥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알란 맥기
알란 맥기
인물 정보
본명알란 존 맥기
출생일1960년 9월 29일
출생지파트리크, 스코틀랜드
국적스코틀랜드
직업레코드 레이블 소유주, 영화 프로듀서, 가수, 작곡가, 기타리스트, DJ, 음악 블로거
악기기타
장르얼터너티브 록
활동 기간 (음악가)1981–1991, 1997–1998
활동 기간 (레코드 레이블 소유주)1983–2007
레이블크리에이션 레코드, 팝톤즈, 359 뮤직
관련 활동더 드레인즈, H2O, 더 래핑 애플, 비프 방 포!, 더 리볼빙 페인트 드림, 더 케미컬 파일럿

2. 초기 생애

맥기는 1960년 9월 29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파틱 지역에서 태어났다.[2] 글래스고에서 성장하며 킹스 파크 중등학교에 다녔는데, 이곳에서 훗날 프라이멀 스크림을 결성하게 되는 바비 길레스피를 만났다. 맥기는 O-레벨 1개만을 취득하고 16세에 학교를 중퇴했다.[5] 그와 길레스피는 펑크 록에 깊이 빠져 있었고, 1978년에는 지역 펑크 밴드인 '더 드레인스'(The Drains)에 함께 합류했다. 이 밴드에는 기타리스트로 앤드루 인네스도 있었다.[3]

더 드레인스가 해체된 후, 맥기와 인네스는 잠시 H2O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런던으로 이주했다.[4] 런던에서는 크로이든 출신의 드러머 마크 자딤(Mark Jardine)과 함께 '더 래핑 애플'(The Laughing Apple)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5] 1983년, 영국 철도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맥기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1960년대 밴드 더 크리에이션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공동 설립했다.

맥기는 크리에이션 레코드 설립 의도에 대해 "사이키델리아와 펑크 록을 융합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5] 그는 또한 더 크리에이션의 노래 제목에서 이름을 딴 밴드 비프 뱅 포우!를 결성하여 1991년까지 활동했으며, 런던 중심부의 '더 아담스 암스'(The Adam's Arms)라는 곳에서 "더 리빙 룸"(The Living Room)이라는 이름의 클럽 나이트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당시 무명이었던 밴드 더 제이서스 앤 메리 체인의 매니저를 맡기 시작했고, 이들의 데뷔 싱글은 1984년 11월 맥기의 레이블인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다.[5]

3. 음악 산업 경력

글래스고 출신인 앨런 맥기는 학창 시절 친구인 바비 길레스피와 함께 펑크 록에 심취했으며, 1978년 지역 밴드 '더 드레인스(The Dregs)'에 합류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 밴드에는 훗날 프라이멀 스크림의 멤버가 되는 앤드루 인네스도 있었다.[3] 이후 런던으로 이주하여 '더 래핑 애플(The Laughing Apple)'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5]

1983년, 영국 철도 근무를 그만둔 맥기는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공동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음반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레이블을 통해 사이키델리아와 펑크 록을 결합한 음악을 선보이고자 했으며,[5] 직접 비프 뱅 포우!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클럽 'The Living Room'을 운영하며 당시 무명이었던 더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을 발굴하고 매니지먼트를 맡아 1984년 그들의 데뷔 싱글을 발매했다.[5] 크리에이션 레코드는 1980년대 중반 영국 인디 음악계의 핵심 레이블로 부상했으며, 프라이멀 스크림,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틴에이지 팬클럽 등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들의 앨범을 발매하며 명성을 쌓았다.[5]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1992년 레이블 지분의 절반을 소니 뮤직에 매각하게 된다.[5]

레이블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계약한 맨체스터 밴드 오아시스가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오아시스는 1990년대 중반 브릿팝 운동을 이끌었으며, 특히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영국 음악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6] 오아시스의 성공은 맥기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고, 이는 당시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당은 맥기를 청년 문화의 아이콘으로 보고 1997년 총선을 앞두고 그의 영향력을 미디어 캠페인에 활용했다. 맥기는 음악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으며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뉴딜' 정책 관련 법안 개정에 기여하기도 했다.[5] 그는 1996년 ''NME''로부터 '신과 같은 천재(Godlike Genius)' 상을 수상했고,[7] 크리에이션 레코드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 연속 ''뮤직 위크''에서 '올해의 독립 레이블'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오아시스의 성공 이후 다른 소속 아티스트들이 그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맥기는 점차 레이블 운영에 회의를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999년 말,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운영 중단이 발표되었고, 2000년 프라이멀 스크림의 앨범 ''XTRMNTR''를 마지막으로 레이블은 문을 닫았다. 크리에이션 해체 후 맥기는 팝톤스 레이블과 '데스 디스코' 클럽 나이트를 운영했으며, 잠시 음악 산업에서 은퇴했다가 복귀하여 새로운 레이블 설립과 매니지먼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1. 크리에이션 레코드 (Creation Records)

맥기가 영국 철도에서 직장을 그만둔 후 1983년, 딕 그린, 조 포스터와 함께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공동 설립했다. 레이블 이름은 맥기가 좋아했던 1960년대 밴드 더 크리에이션에서 따왔다.[5] 맥기는 레이블의 지향점을 "사이키델리아와 펑크 록을 융합하는 것"으로 설정했다.[5] 그는 또한 더 크리에이션의 노래 제목에서 이름을 딴 밴드 비프 뱅 포우!를 결성해 1991년까지 활동했으며,[5] 런던 중심부의 클럽 "The Living Room"을 운영하며 당시 무명이었던 더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의 매니저를 맡아 1984년 11월 그들의 첫 싱글을 크리에이션에서 발매했다.[5]

크리에이션 레코드는 1980년대 중반 인디 음악계의 중요한 레이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프라이멀 스크림, 재스민 밍크스, 로프트 등의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발매했다. 1985년 더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이 워너 브라더스로 이적한 후, 맥기는 이들의 매니저로서 얻은 수익을 활용하여 프라이멀 스크림, 펠트, 더 웨더 프로페츠 등의 싱글을 발매했다. 이 음반들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맥기의 열정과 홍보 능력 덕분에 크리에이션 레코드는 꾸준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5] 워너 브라더스 산하 레이블 운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맥기는 크리에이션을 재정비하고 당시 떠오르던 댄스애시드 하우스 장르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레이블의 주요 아티스트인 프라이멀 스크림과 더불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틴에이지 팬클럽 같은 새로운 밴드들의 중요한 앨범들을 발매하며 슈게이징, 얼터너티브 록 씬을 이끌었다.[5]

그러나 이 시기 크리에이션 레코드는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맥기는 1992년 레이블 지분의 절반을 소니 뮤직에 매각해야 했다. 맥기는 이 시기를 "진정한"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끝이라고 회고하며, 소니의 개입 이전, 즉 조 포스터, 팀 애벗, 딕 그린, 그리고 자신만이 레이블을 이끌던 때와 구분했다.[5]

레이블이 파산 위기에 몰렸을 무렵, 최근 계약한 맨체스터 출신 밴드 오아시스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오아시스는 1990년대 중반 브릿팝 열풍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고, 그들의 두 번째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는 등[6] 독립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로서는 전례 없는 성공을 기록했다.

오아시스의 성공은 맥기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고, 이는 당시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의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당은 맥기를 청년 문화를 이끄는 인물로 보고, 1997년 총선을 앞두고 그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미디어 캠페인을 진행했다. 맥기는 음악가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는 대신, 3년간 정부 지원을 받으며 음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뉴딜' 정책 관련 법안 개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5] 이러한 활동은 당시 문화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에는 BBC One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므니버스에서 맥기와 크리에이션 레코드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기도 했다.

맥기는 1996년 2월 ''NME''로부터 '신과 같은 천재(Godlike Genius)' 상을 받았으며,[7] 크리에이션 레코드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 연속으로 ''뮤직 위크''에서 '올해의 독립 레이블'로 선정되었다. 그는 1997년 에드 볼과 함께 '더 케미컬 파일럿'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제작 활동을 재개하여 1998년 앨범 ''Journey to the Centre of the Mind''를 발표하기도 했다.[2]

오아시스는 2008년까지 약 5,40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지만, 크리에이션 레코드에서 발매된 다른 아티스트들의 앨범은 오아시스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점차 맥기가 레이블의 음악적 방향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1999년 말,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운영 중단이 발표되었다. 레이블의 마지막 공식 발매 앨범은 프라이멀 스크림의 2000년 앨범 ''XTRMNTR''였으며, 이 앨범은 영국에서 골드 인증을 받았다.

3. 2. 팝톤스 (Poptones) 와 데스 디스코 (Death Disco)

크리에이션 레코드 해체 후, 맥기는 2000년 새로운 레이블 팝톤스를 설립했다. 레이블 이름은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의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다.

이 시기 맥기는 '데스 디스코(Death Disco)'라는 이름의 클럽 나이트를 국제적으로 운영했으며, 때로는 직접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데스 디스코는 글래스고, 런던, 뉴욕, 부다페스트, 로스앤젤레스 등 여러 도시에 지점을 두었다. 이 클럽에서는 리버틴스, 킬러스, BRMC, 카이저 치프스, 글래스베가스, 레이저라이트, 하이브스, 카사비안, 더 다크니스, 닐스 칠드런(Niels Children), 더 폭스스(The Foxxes) 등 다양한 밴드들이 공연했다. 맥기는 2009년을 기점으로 데스 디스코 운영에서 손을 뗐다.

앨런 맥기, 케이트 모스, BP 팰런이 2004년 데스 디스코 뉴욕에서 DJing


2007년 5월, 맥기는 언론 ''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재정 문제로 인해 팝톤스를 정리한다고 밝혔다.

3. 3. 은퇴와 복귀

2008년 9월 12일, 맥기는 25년간의 밴드 음악 매니지먼트 및 음반 회사 관련 활동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9] 그는 자녀 양육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를 들었다. 소니(Sony)에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매각한 후에도, 그는 크리에이션 송스(Creation Songs)를 통해 오아시스(Oasis),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My Bloody Valentine), 스월브드라이버(Swervedriver),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바세린즈(the Vaselines)의 유진 켈리(Eugene Kelly) 등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의 곡을 계속 출판했다.

2010년 9월 글래스고의 ''데일리 레코드'' 및 2010년 10월 영국의 ''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맥기는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었으며,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와 피터 J. 캐롤의 난해하고 오컬트적인 가르침,[10] 특히 캐롤의 저서 Liber Nullla에 더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11]

2012년 10월, 맥기는 2013년 일본 록 페스티벌 도쿄 록스의 큐레이션을 돕겠다고 발표하며 음악계 복귀를 알렸다. 그는 도쿄 록스와의 협력을 통해 2013년에 새로운 음반 레이블을 시작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언급했다.[12] 2013년 5월, 맥기는 체리 레드 레코드와의 합작으로 새로운 레이블 '359 뮤직'(359 Music)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레이블이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13][14] 이후 한 달 동안 그는 계약을 위해 2,500건 이상의 지원서를 검토했으며,[28][15] 최종적으로 20명의 아티스트와 계약을 체결했다.[16]

2014년 5월, 맥기는 사이먼 플레처와 함께 크리에이션 매니지먼트(Creation Management)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첫 고객으로는 더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을 영입했으며, 이후 윌코 존슨, 해피 먼데이스, 블랙 그레이프, 캐스트, 글래스베가스, 더 블루톤스, 숀 라이더의 솔로 프로젝트 등을 포함하여 관리 아티스트 라인업을 확장했다.

2018년 8월, 앨런 맥기는 플레처와 함께 새로운 7인치 싱글 전문 레이블인 크리에이션23(Creation23)을 출범한다고 발표했다.[17] 레이블의 첫 번째 발매작은 노스 에식스 출신 그룹 러버 조(Rubber Jaw)의 음반이었다.[18]

2020년, 맥기는 울버햄튼 시 의회와 협력하여 크리에이션 데이 페스티벌(Creation Day Festival) 개최를 추진했다. 이 페스티벌은 원래 2021년 5월 29일과 30일 울버햄튼 웨스트 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며, 해피 먼데이스, 에디터스, 에코 앤 더 버니멘이 헤드라이너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1년 연기되어, '유틸리티 크리에이션 데이 페스티벌'(Utilita Creation Day Festival)로 명칭을 변경하고 2022년 5월 28일과 29일에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는 IDLES와 해피 먼데이스가 헤드라이너로 참여했으며, 글래스베가스, 슬리퍼, 애쉬 및 크리에이션23 소속 여러 밴드들이 출연했다.[21]

4. 정치적 견해

과거 노동당의 주요 재정 지원자 중 한 명으로, 당에 10만파운드를 기부하기도 했다.[22] 그러나 2000년 1월, 그는 노동당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에 비유하며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통제광"이라고 비판했다.[22]

크리에이션 레코드 대표로서 마지막 활동 중 하나는 회사 자금 2만파운드를 사용하여 말콤 맥라렌의 런던 시장 출마를 지원한 것이었다.[23]

2009년 말에는 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2009년 10월 1일자 ''더 선''에 기고한 글에서 보수당 대표 데이비드 캐머런에 대해 "적어도 데이비드 캐머런은 지도자처럼 보인다"고 언급하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24]

2010년 총선에서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로저 윌리엄스에게 투표했다고 밝혔다.[25]

5. 기타 활동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앨런 맥기는 가디언의 주간 음악 블로그에 글을 기고했다.[26] 2011년 9월부터는 허핑턴 포스트 UK에 블로그 글을 기고하고 있다.[27]

맥기의 자서전 ''크리에이션 스토리''는 2013년 11월 7일 판 맥밀란에서 유럽 출판 예정이었다.[28] 이 자서전은 버닝 휠 프로덕션에 판권이 계약되었고, 어빈 웰시와 딘 카바나가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칸 영화제에서 소개될 예정이었다.[29] 이를 바탕으로 2021년에는 맥기와 크리에이션 레코드에 관한 전기 영화 ''크리에이션 스토리''가 개봉했으며, 닉 모란이 감독하고 웰시와 카바나가 각본을 썼다.[35][36][37][38][39][40]

맥기는 여러 영화에도 참여했다. 크리에이션 레코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Upside Down''은 2010년 10월 런던의 BFI에서 초연되었고[30], 2011년 5월 전 세계 개봉을 목표로 했다.[31] 2012년 2월, 맥기는 작가이자 감독인 딘 카바나와 함께 새로운 영화 제작사 '에스칼리에 39'(Escalier 39)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32] 이 제작사는 영화 ''Kubricks''를 2012년 맥기의 웨일스 자택 부지에서 촬영할 예정이었으며, 맥기는 이 영화에 본인 역으로 출연한다.[32] 맥기는 2013년 6월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된 영화 ''스벤갈리''에도 출연했는데, 할리우드 리포터는 그에 대해 "놀랍도록 많은 분량을 화면에 등장하며, 의도적인 농담일지도 모르지만, 트릴비 모자를 쓰지 않은 모습은 볼 수 없다"고 평했다.[33] 또한 크리에이션 레코드 초창기 글래스고 독립 음악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틴에이지 슈퍼스타즈''에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34]

6. 사생활

맥기는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은 실패했지만, 이 사이에서 아들 다니엘을 두었다. 맥기는 과거 오랫동안 약물에 의존했던 문제로 첫 번째 부인과 사이가 멀어졌고, 아들이 아기였을 때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다. 1994년, 아들 댄은 전 부인의 새 남편에게 입양되었고, 이름도 다니엘 데빈으로 바뀌었다.[42] 2005년, 맥기는 ''The Independent''와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들이 그에게 연락을 해 와 재회했다고 밝혔으나,[42] 이후 다시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43][44]

1998년부터 맥기는 케이트 홈즈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다. 홈즈는 밴드 Client의 멤버였고, 이전에는 Frazier Chorus와 Technique에서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패션 브랜드 Client London을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1994년부터 교제해 왔으며, 딸을 한 명 두고 있다.[45]

맥기는 1990년대 중반 심각한 약물 중독으로 인해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당시 얼마나 많은 양의 약물을 사용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으며, 오아시스와의 계약을 제외하고는 1993년에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아시스 멤버들이 자신의 재활에 대해 '쿨'하게 반응했지만, 약물을 끊은 상태가 프라이멀 스크림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41]

그는 축구팀 레인저스의 팬이다.[46]

7. 음반 목록

앨런 맥기가 연주하거나 제작에 참여한 주요 음반 목록은 다음과 같다.

7. 1. 더 래핑 애플 (The Laughing Apple)

싱글 제목형식발매 연도레이블비고
"하 하 히 히"7인치 싱글1981Autonomy
"참여하라!"7인치 싱글1981Autonomy
"소중한 느낌"7인치 싱글1982Essential
"그렇지 않겠니"7인치 플렉시 디스크1983CreationThe Legend!의 "73 in 83" 싱글에 포함됨


7. 2. 비프 뱅 포우! (Biff Bang Pow!)

''비프 뱅 포! 음반 목록''

7. 3. 더 케미컬 파일럿 (The Chemical Pilot)


  • "Astral Dominoes" 12인치/CD 싱글 (1998), Eruption
  • "Move a Little Closer" 12인치 싱글 (1998), Eruption
  • ''Journey to the Centre of the Mind'' 앨범 (1998), Eruption

참조

[1] 웹사이트 Alan McGee - Artist Profile https://eventseeker.[...] 2020-03-12
[2] 서적 The Great Indie Discography Canongate 2003
[3] 간행물 True Adventures of Primal Scream http://www.theprimal[...] 1999-11
[4] 웹사이트 Songwriter - Ian Donaldson (H20) https://www.freshman[...]
[5] 서적 The Last Party: Britpop, Blair and the Demise of British Rock Harper Perennial 2003
[6] 간행물 Top 20 Singles and Albums of the Nineties Miller Freeman 1999-12-18
[7] 간행물 22 glorious years of NME's Godlike Genius Award http://www.nme.com/p[...] 2016-01-19
[8] 뉴스 Alan McGee: Why I'm giving up my label https://www.independ[...]
[9] 뉴스 Alan McGee announces his retirement https://www.theguard[...] 2008-10-30
[10] 뉴스 Cultural Life: Alan McGee, Creation Records founder https://www.independ[...] 2010-10-22
[11] 웹사이트 Here's 8 Celebrities Who Practice Chaos Magick http://ultraculture.[...] 2014-11-13
[12] 웹사이트 Alan McGee announces plans for a new record label in 2013 http://dangerousmind[...] 2012-10-09
[13] 뉴스 Creation Records' Alan McGee to launch new label - 359 Music https://www.theguard[...] 2013-05-08
[14] 간행물 Alan McGee launches new label, 359 Music, with Cherry Red http://www.musicweek[...] 2013-05-07
[15] 웹사이트 Alan McGee on his label's new signings, the Rolling Stones tour and if Oasis are about to reform http://dangerousmind[...] Dangerous Minds 2013-07-15
[16] 뉴스 Alan McGee announces 20 acts to sign with his new label 359 Music http://dangerousmind[...] Dangerous Minds 2013-06-24
[17] 웹사이트 Wolverhampton Literature Festival: Alan McGee shines in brutally honest chat - review https://www.expressa[...] 2020-02-02
[18] 웹사이트 Creation Records' Alan McGee Launches New Label https://exclaim.ca/m[...] Exclaim! Media
[19] 웹사이트 Announcing a brand new festival for 2021: Creation Day - Utilita Creation Day Festival https://creationdayf[...]
[20] 웹사이트 Alan McGee Unveils New Festival Celebrating Legacy of Creation Records https://www.onlyanor[...] 2020-10-19
[21] 웹사이트 Amazing line-up and new sponsor unveiled for city's Utilita Creation Day Festival - Utilita Creation Day Festival https://creationdayf[...]
[22] 뉴스 Labour pop guru turns on Blair http://news.bbc.co.u[...] 2000-01-21
[23] 웹사이트 How I got Malcolm McLaren to stand for mayor of London https://www.theguard[...] 2010-04-09
[24] 웹사이트 Alan McGee says musicians such as Sir Paul McCartney should retire at 40 https://www.telegrap[...] 2018-02-02
[25] 뉴스 Alan McGee: 'If there's one thing Creation Records wasn't, it was boring' https://www.theguard[...] 2010-09-21
[26] 웹사이트 Alan McGee https://www.thegu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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